서울중앙지법, SK케미칼·애경 임직원 등 13명 무죄판결…검찰, “즉각 항소”

인체에 유독한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 등 13명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4,000명이나 인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가해자가 없다는 무죄가 나오냐”며 반발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등 임직원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인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과 폐질환 발생 및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무죄의 이유였다.

재판부는 지난 2018년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진행된 두 성분의 독성 시험에서 권장 사용량의 833배로 설정해 4주간 하루 20시간, 주 7회 빈도 실험을 했지만 폐섬유화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CMIT와 MIT 성분이 PHMG와 달리 사망·상해·천식을 일으키거나 기존에 앓던 천식을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재판부가 2년여 동안 심리한 결과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는 지난번 유죄판결을 받았던 PHMG, PGH 성분 가습기 살균제와는 성분이나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며 “향후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될 지 모르겠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원칙의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는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가해기업 측의 궤변에 대해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고 온갖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피해를 의학적 검증하면 되는 사안을 동물실험으로 검증됐는지를 따지는 어처구니 없는 1심 재판부의 모습에서 피해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고 즉각 반발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는 아울러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이미 제품에 노출된 피해자가 있으니 피해는 분명하고 동물실험은 어떤 기전으로 제품이 건강피해를 유발하는지 확인하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동물실험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니 인체에 대한 노출피해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비상식적 판결을 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는 “지난해 10월 말 현재,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만들어 판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피해 신고자는 모두 835명이다. 이마트와 애경이 함께 판 제품 사용 피해자(240명) 등을 더하면 애경 제품을 쓴 피해 신고자는 1,077명에 이른다. 2019년 7월에 발표한 검찰의 수사 결과만 보더라도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피해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가 모두 97명이며, 이 가운데 세상을 떠난 12명이다. 이 피해자들이 어딘가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에 목숨을 잃은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는 그러면서 “기체 상태로 흡입하면 안 되는 물질을 가습기살균제로 만들어 팔면서 흡입독성조차 검증하지 않은 가해기업들의 '업무상 과실'조차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번 재판을 방청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선고 직후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느냐. 해당 제품을 쓰고 사망하거나 지금까지 투병 중인 피해자는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다는 것이냐!”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피해자는 그러면서 “옳지 않은 것들을 감추기 위한 업체관계자들의 증거인멸 행위와 사법부의 기만을 밝혀내기 위해 다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SK케미칼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선고에 대해 “SK케미칼이 PHMG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독성 수치를 숨기고 허위 기재한 사실, PHMG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것을 은폐하기 위해 실험보고서 제목을 조작하기까지 한 사실 등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입증됐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그로 인해 야기된 건강피해에 대한 원료공급업체의 형사책임을 모두 부정했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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