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야 통 지음, 코쿤북스 펴냄

『리얼리티 버블』은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지야 통의 첫 책이다.

통은 17년간의 방송 경력을 통해 과학에 대한 사랑을 키워 왔다. 인터뷰어로서 그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전문가들을 만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는 법을 배웠다.

이 책은 바로 그 ‘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과학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본 우리 세계의 진실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통은 우리가 ‘거품 속에서 현실을 대한다’고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기 싫은 것들을 무시하고, 거품 속 안온한 현실을 즐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거품이 언젠가는 터진다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현실도 산산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통은 보이지 않는 현실의 추세들을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가시적인 것으로 변환시킨다. 수많은 흥미로운 과학적 사례들을 통해, 거품을 걷고 현실을 직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정세랑 작가가 추천사에 쓴 것처럼, “불온한 균열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거품을 깨트려 새로운 현실을 열어젖힐 혁명적 생각들로 말이다.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생물학적 맹점(1부), 사회적 맹점(2부), 세대적으로 전승된 맹점(3부)을 소개한다. 그중 1부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대할 때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룬다.

먼저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하나는 ‘규모’이다. 우리는 극단적인 것을 잘 보지 못한다.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우리 시야에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우주는 너무 거대해서 가늠하기 어렵고, 작디 작은 생명들은 보이지 않으므로 아예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특히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벼룩처럼 인간에게 쓸모 없는 작은 생명들은 박멸의 대상이 되었다. 이보다 더 작은 미생물과 박테리아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 책이 잘 보여주듯이, 사실은 이 작은 생명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가꾸는 주역들이다. 다름 아닌 이들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만들고 먹는 식량을 키운다.

우리의 면역 체계와 생명 활동 전반을 책임지는 것도 이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현실에 대해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우리 자신을 박멸하기 위해 골몰해왔는지 모른다.

친환경 에너지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에너지의 절대 다수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우리가 친환경 전기 자동차에 충전하는 전기는 석유를 태워서 만든 것일 가능성이 높다. 통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화석연료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화석연료의 고갈을 걱정하지만, 사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을 태움으로써 공기 중으로 풀려나오는 탄화수소가 훨씬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410억 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에베레스트 산 41개를 쌓아 놓은 것과 맞먹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 기후 변화를 논할 때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쓰레기 재앙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보이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실상을 반영하기엔 한참 부족한 것 같다. 단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자. 20세기 초에 발명된 플라스틱은 지금껏 80억 톤가량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가운데 60억 톤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플라스틱 생산은 해마다 늘고 있으며, 앞으로 10년 동안 40퍼센트 가까이 더 늘 전망이다. 매년 500만 톤에서 1,300만 톤에 이르는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는데,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플라스틱은 우리가 사용하는 석유의 극히 일부분(약 5%)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플라스틱 쓰레기는 우리가 직면한 화석연료로 인한 재앙의 아주 작은 ‘눈에 보이는’ 부분일 뿐인 셈이다.

우리는 사실 우리 세계가 어딘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거품 속에 그대로 머물게 만드는 것들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대안이 없다고 믿으며 자랐다. 사회 체제가 이런 식으로만 작동한다고 들었다. 통은 그것이 우리의 맹목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회 체제는 우리가 근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시간과 공간, 자본주의 시스템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왔으므로 그것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통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이 시스템이 인공의 산물,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현실로 굳어졌는지 보여준다.

통이 보기에, 우리를 실재 세계로부터 유리시킨 주범이 바로 이 시스템이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 전체를 소유한다는 그릇된 믿음을 창조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 그러므로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거품 속 현실이 우리의 세계를 끝장내기 전에, 우리는 인류를 세상의 주인으로 만든 이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해야 할지 모른다. 이 책은 이 파괴의 최전선에 설 불온한 사상의 영웅들을 소집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저자 지야 통(JIYA TONG)은 캐나다의 대표적인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캐나다로 이주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2018년까지 10년에 걸쳐 캐나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간판 과학 프로그램인 「데일리 플래닛」을 진행했으며, 과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 함께 「NOVA SCIENCENOW」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는 세계 자연 기금(WWF) 캐나다 부의장이자, 왕립 캐나다 지리학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저작권자 © 에코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